Saturday, April 23, 2011

안도현 시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세 개의 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함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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