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8, 2011

Der Steppenwolf

- 헤르메네가 하리에게 - 


  오늘 당신에게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야겠어요. 당신도 알고 계실 테지만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지요. 내가 지금 당신에게 말하는 건 나와 당신과 우리의 운명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예요. 하리, 당신은 예술가이고 사상갑니다. 기쁨과 신념에 가득차 언제나 위대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작고 예쁜 것에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삶이 당신을 각성시키고,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하면 할수록, 당신의 괴로움은 커져갔고, 당신은 고통과 두려움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점점 깊숙이 빠져들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목까지 빠져 있습니다. 당신이 한때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으로 알고 사랑하고 숭배했던 모든 것, 인간과 우리 인간의 고귀한 천성에 대해 당신이 예전에 가졌던 모든 믿음이 하등 도움이 안 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거지요. 당신의 믿음은 이제 더 이상 숨쉴 공기가 없어요. 하지만 질식사한다는 건 끔찍한 죽음이지요. 내 말이 맞지요, 하리? 이것이 당신의 운명인가요?
 
당신은 인생에 대한 나름의 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믿음, 어떤 요구를 가지고 있었던 거지요. 당신은 행동하고, 괴로워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점차 깨닫게 된 거지요. 세상은 그런 행위나 희생 따위를 당신에게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에요. 인생은 영웅의 역할 따위가 필요한 영웅시가 아니라, 그저 먹고 마시는 데, 커피와 뜨개질 양말에, 타록크 놀이나 라디오 음악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사는 시민의 쾌적한 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이와는 다른 것, 그러니까 영웅적인 것이나 아름다움을 원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시인을 숭배하고 성스러운 것을 경배하는 사람은 바보나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지요. 그렇습니다. 나도 이와 똑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리 씨. 나는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어요. 훌륭한 모범을 본받아 생활하고, 자신에게 지고한 것을 요구하고, 거룩한 사명을 완수할 운명을 타고났던 겁니다. 나는 위대한 운명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왕비가 되거나, 혁명가의 아내, 천재의 누이, 순교자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내게 허락한 것은 고작 그럭저럭 괜찮은 취미를 가진 고급 창녀가 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조차 간신히 이루어낸 겁니다! 이것이 내가 걸어온 길입니다. 나는 한동안은 어쩔 줄을 몰랐고, 한참 동안 내 자신에게 그 책임을 묻고자 했습니다. 나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결국 삶은 항상 정당하다, 삶이 나의 아름다운 꿈을 비웃는다면 그건 내가 멍청하고 터무니없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에요. 그러나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눈과 귀가 밝고 또 얼마간의 호기심도 가졌기 때문에 이른바 삶이란 것을, 아는 사람들과 이웃들,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과 운명을 정말 치밀하게 관찰했습니다. 거기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하리. 내 꿈이 정당했다는 것, 백 번 천 번 정당했다는 거예요. 당신의 꿈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삶은, 현실은 정당하지 않아요. 나와 같은 여자가 돈 많은 사람에게 고용되어 타자기 앞에 앉아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비참하게 늙어가거나, 돈 많은 자와 돈 때문에 결혼하거나, 일종의 창부가 된다거나 하는 따위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그건 옳지 않아요. 당신 같은 사람이 고독과 절망 끝에 면도칼을 잡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아마도 나의 불행이 더 물질적, 도덕적이고, 당신의 불행이 더 정신적일 거예요. 그러나 그건 결국은 같은 길이에요. 당신이 폭스트롯을 두려워하고, 술집과 댄스 홀과 재즈 음악 따위에 반감과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런 것을 충분히 이해해요. 당신이 정치를 혐오하는 것도, 정당과 언론의 헛소리와 무책임한 행동에 당신이 비통해하는 것도, 과거의 전쟁과 앞으로 닥칠 전쟁에 대해, 또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고, 읽고, 집을 짓고, 음악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고, 교양을 쌓는 방식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옳아요, 황야의 이리 씨. 천 번 옳아요. 그러나 당신은 몰락할 수밖에 없어요. 당신은 이 단순하고 쾌적하고 사소한 것들에 만족하는 요즘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그래서 이 세상이 당신을 밖으로 내쫓아버린 거예요. 당신은 이 세상에 살기에는 한 차원이 높은 거예요. 오늘날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어서는 안돼요. 서툰 가락 대신 음악을, 향락 대신 기쁨을, 돈 대신 영혼을, 영업 대신 참된 일을, 장난질 대신 열정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고향이 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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