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11, 2011

A Letter from Father

고등학교 2학년 때 한창 방황하던 무렵 아버지께서 써 주신 편지.
반항도 많이 했었고 나쁜 길로 빠질 뻔도 했었고, 극우/극좌 사상에 탐닉했을 때였었다.
가끔씩 힘들때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특정 인명, 지명은 OO처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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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OO에게

이 편지도 보고 찢을런가 모르겠다.
오늘 머리카락을 자르니 한결 어린 티가 나는구나. 나는 이곳 OOO에 이사와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우리가 어릴때 너가 1살일때 낑깡낑깡하게 히죽 웃으며 내 뒤를 따라 다니던 OOO동의 생활이 생각났다. 내가 전문의 시험 준비하러 방에 들어가면 못 들어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 넘었다.

나는 대학생활과 전문의를 마치고 직장생활 (OO대 교수)를 할때 항시 minority였다. 아마 그래서 불이익도 많이 받고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외과 전공의 동기 중 그래도 성적이 가장 좋았다. 동기들은 나에게 서울대 교수 혹 그에 상응하는 자리로 취직이 될 것이라 나를 인정해 주었는데 대부분 사회생활이 그러듯이 "끼리끼리"가 먼저이니까 나는 여러 군데에서 밀리고 말았다.


이것은 서울대에 막 입학해서도 느꼈어.
우리때 처음으로 서울과 부산은 고교평준화가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 각 학교에서 1~3명 정도만 합격하였어. OOO고도 그 부류에 속했고. 나는 입학해서 내 고교동창들만 아는데 서울 출신들은 학교가 다 다른데도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친하더라. 나중에 알고 봤더니 고등학교 때 과외 등등으로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더라.
이때부터 나는 한 집단의 minority는 매우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


OO대에서도 나는 OO대 의대교수 95~99%가 OO대출신인 유일한 서울대 출신이고 5% 미만의 타대학 출신인 minority였어. 내가 그 출신들과 똑같이 연구하고 발표하고 수술하면 그들은 자기 출신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왜 여기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고 간혹 헛소리를 했지. 그래서 평균의 그들보다 나으려고 엄청난 노력과 정열을 기울였어.


어느 한 학기는 학회에 한꺼번에 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지. 너도 알다시피 환자를 보는 임상교수의 논문이 대부분은 환자에 관한 것인데 OO에서 ◇◇대가약 80% 이상의 환자를 보유하고 나머지 10~20%가 OO대에 오니까 논문 쓰기가 매우 힘들었어.
밤이고 낮이고 수술에 매달려 내가 그만둘 때 쯤에는 대장항문암의 약 60%는 내 환자였지. 오히려 ◇◇대보다 환자가 많았어.

대학교수 월급은 지금 의사(평균적) 월급에 비해 적다. OO에서 너희들 교육비, 생활비를 제외하니 한달에 약 OOO만원 정도 저금이 가능했지. 내가 20년을 더 해도 약 O억 정도밖에 안돼. 이것으로는 내가 나의 2세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더라. 너가 만일 미국유학이라도 간다면 1년에 약 5천만원이 드는데 아빠는 무능한 부모가 되는 것이지.

너는 어릴 때 영특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착실, 성실하며 우리 부모 말을 잘 들었어.

나는 결심했지.
1) Minority로 살면서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뼈를 깎는 고생을, 질시를 받아가면서 하지 말자. ==> 즉 majority로 살면서 내가 힘이 있는 동안 최선의 노력을 하자.
2) 2세에게 약간의 자립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재화(돈)을 벌자. (이것은 나의 노후 생활도 약간은 윤택하게 하자)
3) 내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나와 같은 minority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하지 말자. ==> 실력은 어디 안 가니까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하면 좁은 OO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오겠지.

때마침 그런 기회가 온 것이야.
나의 친구 몇 명과 서울에 개업하려고도 했는데 사람이 여러 명이다 보니까 이것저것 따지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지. 일단 떠나려고 하니까 그곳에 있기가 갈수록 싫었지.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어. 큰아들이기에 책임감이 앞서지 않니.

나는 지금 생각하니. 우리가 서울로 온 것이 잘못됐니.
내 판단이 틀렸구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착하던 내 아들이 대들고, 얼굴을 붉히고
위기다.

너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줄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한 것도.
그러나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야.
머리만 좋다고 잘 하지는 않아.
꾸준히, 꼼꼼히, 파는 것이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러한 태도는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야.
혹시 방법이 빗나간 것은 아닐까?
조금만 다른 방법으로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최선을 다하자.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점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인 것 같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것은 없니. 뭐 도와줄 것은 없니?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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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제일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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